임나일본부는 임나국사 명칭이 일본서기 완성과정서 변경추정

“온조계 백제가 비류계 왜와의 군사적 비교서 월등 한반도 지배설은 사실 아니다”

홍순주 역사전문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3/02 [16:46]

▲ 홍순주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회장.  ©브레이크뉴스

국내 사학계나 언론계에서는 '임나일본부는 없다'는 방어적 역사관으로 일관하여 발표하는데 이는 한일 간의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소치에서 나오는 해프닝인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 경성제대 일본인 역사교수였던 스에마츠 야스카즈가 그의 책 임나흥망사에서 AD 4C~6C에 왜가 한반도 남부인 가야지방을 통치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식민사관의 한 가지 가설입니다.


그러나 AD 4C 중엽 당시 요서백제에서 근초고왕 시절에는 온조계 백제 세력이 비류계 세력(왜)을 제압하자 이들이 한반도로 도피하게 됩니다.

비류계 세력이 경북 고령을 중심으로 임나가라(가야)를 잠시 세워 저항하다가 백제에게 패해서 왜열도로 도피한 까닭에 백제가 정치적 우위에 있었던 실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온조계 백제가 비류계 왜와의 군사적 비교에서 월등하였기에 왜가 한반도에 와서 지배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온조계 백제 세력이 왜열도로 쫓겨 간 비류계 백제인 왜를 감독 관리하기 위한 정부기구로서 임나국사(任那國司, 한단고기), 일궁부(日宮府. 일본서기), 임나지왜재(任那之倭宰, 속 일본기)등의 명칭이 존속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임나국사는 대마도에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백제가 현지 지도를 위해 파견한 임나 왕과 군령성주의 통제 아래 왜에서 파견된 장수와 외교사신이 함께 있었던 기관이 바로 임나국사였습니다.


백제 무령왕 7년(507년)에 왜를 전담하는 정부 부서로서 일궁부가 설치되었고 일본서기에 무령왕의 아들인 사아를 왜국에 군(君, 현지 총독)으로 파견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백제 성왕 시절(544년)에는 임나가라 지역을 침공하는 신라진흥왕 세력을 막기위해 경남 함안지역에 설치한 임나지왜재 기관명이 속 일본기에 나옵니다.

 

백제 군령성주의 통합 지휘아래 백제군과 왜에서 파견된 군사들이 합동으로 신라군을 방어하는 백제와 왜 연합군사 지휘사령부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온조계 백제가 비류계 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임나가라 지역(한반도 남부), 대마도, 큐슈 북부(오이타 현) 등지에 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오히려 백제가 주도해서 세운 감독관리 관청이 임나일본부의 정체이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670년 일본건국 후 720년에 일본서기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임나국사 등의 명칭이 임나일본부로 변경되지 않았나 추정됩니다.

 

*필자/홍순주. 역사학자.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회장. 성균관 전학(역사담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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