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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의 정치경제학, "도둑질, 과연 나쁜가?"

조약골(편집위원) | 기사입력 2002/03/23 [19:21]
도둑질에 관한 토론회에서는 5~6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여 도둑질에 대한 전반적인 쟁점들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을 벌였다. 특히 일본에서 가메다씨가 와서 이 문제에 관한 그의 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물건을 훔치는 것이 바로 일인 것이다. 물론 물건을 훔쳐서 그것을 팔려는 경우는 직업적으로 물건을 뽀리는 사람에게 해당하고, 많은 아마추어 ‘뽀리꾼’은 자신에게 필요한 식량을 얻기 위해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

다른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물건을 뽀리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도둑질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혹은 그저 순간의 주체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물건에 손이 가기도 한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이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가, 즉 도둑질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역시 빼놓지 않고 토론해야할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image1_left}우리는 당초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놓고 하나씩 걸고 넘어지며 자유롭게 토론을 할 예정이었다.
1. 도둑질 경험
2. 초국적 자본의 시간제 노동자들의 체험담
3. 아나키즘에서의 도둑질
4. 도둑질의 법적 처벌수위
5. 일본 뽀리꾼들의 주장과 현재



이중에서 우리는 먼저 가메다씨로부터 일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동경에는 아나키스트들과 돈없는 사람들이 언제나 모여 술을 마시고 각종 토론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아카네’라는 카페가 있다. 가메다씨 역시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서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그대신 약간의 교통비를 받는다고 한다. 그 카페에 약 2주전에 누가 화장실의 유리를 깨고 침입하여 4만엔을 훔쳐간 사건이 발생했다. 아카네의 스태프들은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대강 짐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카네 카페 주변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어떤 젊은 남자였다.

이와 같은 사건은 약 한달 전에도 발생한 적이 있어서 아카네의 스태프들은 이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아카네는 값비싼 도쿄의 물가에 비하면 정말 싼 가격으로 언제나 찾아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민을 위한 공간인데, 이런 곳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스태프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스태프 중 한 명인 30대 남자는 보안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그냥 앉아서 당하느니 화장실의 유리를 강화유리로 교체하는 등 '소는 이미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튼튼히 고쳐놓자'는 것이다.

{image2_left}이에 대해 가메다씨의 의견은 달랐다. 가메다씨는 이런 식의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해결 방안에 반대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쿄는 물가가 비싸고 노숙자들이 매우 많지만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쉼터와 같은 시설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노숙자들에 대한 지원 역시 너무 부족해서 정부는 보통 이들을 그냥 방치한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메다씨는 이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돈을 훔쳐간 노숙자를 처벌하거나 또는 아카네의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사건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노숙자들이 머물고 있는 길바닥으로 가서 스태프들이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젊은 남자를 만나려고 시도했다. 가메다씨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돈을 훔치게 된 사정은 이해하지만 아카네 카페와 같이 서민을 위한 곳에서 도둑질을 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 말하고 자신의 친구가 시부야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와 그를 연결시켜 주려는 것이 가메다씨가 생각하는 사건의 본질적인 해결방안이었던 것이다.

결국 시간이 부족해 그 노숙자를 만나지 못하고 한국으로 온 가메다씨는 일본에서도 돈이 없는 사람들이 빈 건물을 점거하거나 또는 염가에 임대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고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대학교 안의 기숙사에 빈 공간에 그 대학의 학생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그곳에서 살면서 자체적으로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주민 자치를 실현하려 노력한 일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이들이 그곳을 무단으로 점거했든 혹은 염가에 임대했든 간에 어떤 의미에서 공간을 도둑질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공간을 다시 꾸미며 자체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려 노력한 모습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에서 이 일을 나중에 알아차리고 경찰력을 동원해 이들을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긴 했지만.

가메다씨의 설명 이후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는 노숙자들이 다시 돈을 훔치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노숙자들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다. 가메다씨는 이에 대해 아카네는 이미 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라고 설명하면서 노숙자들까지 지원할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가메다씨는 40대의 중년신사인데, 혹시 개인적으로 도둑질을 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도둑질 한 적은 없지만 전철에서 부정승차는 해봤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가 전철을 부정승차한 것은 단지 자신이 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 전철회사가 노조를 탄압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가메다씨는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식의 학비는 부인이 댄다고 말했다. 그들에겐 16살짜리 딸이 있는데, 가메다씨는 그 딸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항상 '학교에 가기 싫으면 억지로 갈 필요가 없다'고 일러주었다고 했다. 그 딸은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다행히 자신이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원해서 선택했기 때문에 별 불만없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있기 때문에 1년에 약 60일 정도는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 가메다씨와 함께 소풍을 가거나 논다고 한다.

일본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들은 보다 본격적으로 도둑질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 노숙자가 아카네가 아닌 보다 부유한 곳에서 돈을 훔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궁금해졌다. 가메다씨는 노숙자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거나 이들을 지원하는 다른 단체와 연결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다.

이에 대해 다른 이는 물건을 훔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친구는 노숙자 지원 단체들도 결국 세금을 받아 운영하는 것인데, 세금이란 것이 국가에 의한 도둑질이므로 우리가 도둑질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다소 과격한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하는 가게에서 금고를 도둑맞은 적이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일이라면 쉽게 도둑질을 합리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엄청난 돈을 가진 회사에서 약간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전혀 범죄가 아니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예를 들어 금고를 뺏어오자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물건을 훔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대자본가들도 역시 훔쳐서 그만큼 배를 채운 것이니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조건 도둑질은 안 된다 또는 무조건 도둑질은 괜찮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그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둑질은 괜찮다고 주장을 하는데, 과연 무엇이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둑질인가에 대해 논의할 필요를 느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초국적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들에 대한 타격을 준다는 의미에서 초국적자본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괜찮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 다른 친구는 그것은 초국적자본에 대한 타격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힘없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잘못된 실천이라고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도둑질은 커다란 의미에서 일종의 ‘착취’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남성 노동운동가가 아내를 착취하는 것, 자식이 부모를 착취하는 것 등도 다른 의미에서 도둑질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착취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고, 또한 부부와 가족 사이에는 벌어지는 일방적인 관계는 착취가 아니라 ‘상호부조’(mutual aid)라고 봐야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다음 시간에는 착취의 의미와 구체적인 도둑질 사례 모음 그리고 어떤 것이 올바른 정치적 도둑질인지 논의해보기로 했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기존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 즉 도둑질은 법에서 금지하고 있으므로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본문은 3월 14일 목요일 오후 2시 대자보 사무실에서 열린 자유학교(freeschool)의 토론회 "도둑질은 과연 나쁜 것인가"의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 [도둑질토론모임안내] 3월 24일 일요일 오후 4시 대자보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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