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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사업의 전면적인 방향 전환 촉구한다"

민노당 "무엇이 여성 권익을 신장시키는 것인가"

지형준 기자 | 기사입력 2006/02/20 [11:07]

지난 16일 여성가족부는 2006년을 “여성에게 도약을, 가족에게 희망을 주는 해”로 정하고, △보육서비스 질적 수준 개선 및 관리체계 구축 △돌봄의 사회화 및 직장과 가정양립지원 △여성 일자리 창출지원 △여성의 인권보호와 성매매 축소 △통합적 여성정책 추진 기반 마련 등 5개 정책목표 22개 이행과제를『2006년 여성가족부 주요업무계획』으로 확정·발표했다.

그 중에서도 영아에 대한 기본보조금 도입 등 여러 보육대책이 가장 중점사업으로 제시되었고, 아버지 출산휴가제 도입 등 가족친화적인 사회환경 조성, 여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여성희망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심각한‘빈곤의 여성화’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가족부의 사업 방향은 우리 사회 뜨거운 이슈인‘저출산·고령사회 위기’에 적극 조응하는 기조로 맞추어진 듯하다. 여성인력 활용과 출산율 제고, 즉 줄어드는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 유휴인력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하고,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국가 발전의 지표가 되어버린 합계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양육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직장과 가정 양립 지원’은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특약처방으로 보인다.

물론 oecd 최하위인 여성경제활동참가율 제고와 질 높은 보육서비스 확대는 국정과제에 주요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업무계획을 보면 우리 사회 여성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여성가족부가 과연 빈곤화와 비정규직화, 저임금화로 표현되고 있는 ‘여성의 위기’- 저출산·고령화로 표현되는 ‘국가의 위기’가 아닌 - 를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신년 들어 많은 여성단체들이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빈곤의 여성화’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 기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각 분야별 이행과제에도 빈곤 여성과 비정규직, 저소득층 가족에게 도움은커녕 양극화만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내용들이 많다.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보육 기반 조성은 말뿐 사실상 보육의 시장화를 노정하고 있다. 이번 업무계획과 같은 날 공청회에 제출된‘제1차(2006~2010) 중장기 보육계획(안)’의 이전과 다른 주된 변화는 바로 기본보조금 제도의 도입이다. 기본보조금 제도는 정부가 일정 기준으로 산정한 표준보육비용에 맞추어 민간보육시설에 부모보육료 수입과의 차액을 정부 재원으로 보존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발표된 [저출산 종합대책] 중에도 향후 5년간 기본보조금으로 사용될 예산은 5조5천억으로, 전체 저출산 대책 재원의 1/3이 넘는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재정이 민간보육시설로 흘러들어가 보육의 질,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온전히 소요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보육료 자율화에 대한 대기업과 경제부처의 압력에 보육료 상한선 예외시설까지 허용된다면 말 그대로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영리시설에 혈세를 투자하여‘보육 시장’을 키우는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육의 시장화는 우리 아이들을 보편적이고 평등한 보육이 아니라 경쟁과 양극화로 내모는 지름길이 될 것이 뻔하다. 국가는 보육비용만 보조하고 실제로는 민간보육시장이 보육서비스를 좌지우지 하게 된다면 아무리 많은 국고가 투자된다 한들 보편적인 공보육 실현은 요원한 일이다.

둘째, 빈곤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직장과 가정 양립 지원’은 또 다른 차별만을 초래할 뿐이다. 여성만의 몫이었던 돌봄을 사회화하고 남성의 분담을 유도하겠다는 ‘가족친화적 사회환경 조성사업’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아버지 출산휴가제, 육아휴직제 등 한두 가지 제도만으로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의 심각한 직장·가정생활 불균형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시행되는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실효성이 없는데, 남성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참여제도라고 ‘그림의 떡’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2003년 육아휴직 이용자의 절반 이상인 50.7%가 500인 이상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직장과 가정 양립 지원’제도가 남성노동자에게 확대되더라도 대기업, 정규직노동자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큼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대다수 빈곤 여성과 저소득층 가족에게‘직장과 가정’은 이미 양립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일이 곧 생계유지와 직결되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가정생활의 포기 혹은 방치 뿐 이다. 가족과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한 빈곤 가족의 아이와 노인들은 방치되고 있고, 부모 중 한명이 홀로 일과 가정생활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한부모가족의 형편은 더욱 열악하다.

저임금·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고용이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여성이 주요 희생양이 되고 있는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는‘가족친화적 기업 만들기’가 큰 효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기업의 이윤 창출만을 위한 ‘여성인력 활용’은 여성노동자의 불안정 노동을 더욱 고착시킬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현재 50.1%에서 2010년 5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오는 5월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을 발표하고, 기업과 교육기관, 정부와 지자체 등 민·관이 협력하여 [여성희망일터지원단]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취업을 원하는 경력단절 여성과 청년여성에게 지역 산업클러스터·중소기업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업주부나 청년여성 노동력의 활용만 강조할 뿐, 이미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비정규직으로 ‘지나치게 활용’되고 있는 문제는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가족부의 관점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안정적 일자리 제공과 적절한 소득 보장은 뒤로 하고 일자리‘수량’에만 관심을 둔 고용정책을 추진한다면 당장 여성경제활동참가율 수치를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여성의 고용불안과 빈곤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이미 기혼 여성노동자 4명 중 3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더 많은 전업주부의 취업만 돕는다면 그만큼 여성의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고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보호’명분으로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형식적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도입하는 데 그치고 있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성 인지적 관점에서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지금 여성가족부가 나서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여성가족부가 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듯한 제도라도 일단 만드는 데 의의를 두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 어떤 경우라도 자칫 여성 불안정 노동 확산에 여성가족부가 나서서 기업의 들러리를 서는 격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각 부처 합동으로 [성 인지적 빈곤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기구]를 설치하고, 여러 빈곤·복지·노동관련 정책에 여성의 삶과 요구를 반영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2006년, 벽두부터 많은 언론매체들이 ‘여풍당당(女風堂堂)’, ‘성(性)의 혁명’등 각종 수사를 동원하여 여성고위직·전문직 진출 확대, 각종 고시 여성합격률 증가를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약진은 여성 개인의 과감한 결단력과 의지, 일과 가정 사이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포장되고 있다.

그러나 소수 여성의 성공 신화는 곧잘‘일’이 자아실현의 발판도 되지 않으며 일·가정 양립을 선택할 수도 없는 다수의 빈곤 여성, 여성노동자의 존재를 덮어버리고, 그러한 현실에 처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하게 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더더욱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는‘여성 빈곤 해소’에 맞춰져야 한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 양육·돌봄의 부담, 그리고 여성폭력과 맞물려 있는 여성 빈곤의 복합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것을 여성가족부의 주요 정책 기조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성 인지적 빈곤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기구] 설치하여 그동안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었던 사회보험·공공부조 등 사회복지제도 개선, 성별분업화된 노동시장의 구조와 관행을 없애는 제도 개선 등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노동·복지·양극화 해소 대책을 여성의 시각에서 손질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번 업무계획 중 맨 마지막 순위로 밀려나 있는 여성가족부의‘통합적 여성정책 추진 기반 마련’은 그런 측면에서 각 기관별로 한두 가지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게 하는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 보다 질적으로 확대·강화되어야 한다.

여성인력 활용과 저출산 극복이 아닌 ‘여성 빈곤 해소와 인권 확장’을 정책 목표로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지난 2005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될 당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몇몇 시민사회단체는 여성 인권관련 정책 추진, 성차별 시정기구로서 여성부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번 업무계획은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여성 폭력 예방과 인권 보호, 정부 정책의 성 인지적 개선을 선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이기 않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과도하게 규정하고 있는 ‘저출산·고령사회 위기’, 그 배경과 원인 분석, 향후대책들이 모두 여성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삶과 미래를 변화시키는 많은 정책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육, 가족, 여성고용 등 같은 분야의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여성인력 활용과 저출산 해소’인지‘여성 빈곤 해소와 인권 확장’인지에 따라 세부 정책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여성가족부는‘무엇이 여성 권익을 신장시키는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그에 입각한 정책 목표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낮은 곳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성가족부의 좀더 각별한 노력을 촉구한다.

2006년 2월 19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위 글은 민노당 정책위원회의 정책 논평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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