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칠검> 명쾌함까지 함께 베어 버렸나?

지나치게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출현

박형준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5/09/28 [10:47]

한동안 뜸했던 중국 무협영화가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최고의 무협 영화 달인 쉬케(서극)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고 합니다. 한국 배우인 김소연이 캐스팅되서 더욱 화제인 영화, <칠검>이 바로 그 영화입니다.

<황비홍> 시리즈의 공전의 히트 이후 장 끌로드 반담과 함께 콤비를 이루며, 할리우드를 노크하기도 했지만, 상당기간 슬럼프에 시달리던 쉬케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달인'다운 연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 무협영화에 있어서 쉬케 감독이 없는 무협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무협영화 아닌 다른 영화를 연출하는 쉬케 감독도 썩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제작에만 전념하다가 직접 연출을 맡았던 <영웅본색3>은 전작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였고, 장 끌로드 반담과 콤비를 이루었던 영화도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못했죠. 그런 그의 부활 여부와 함께 여명, 견자단, 양채니 등의 초호화캐스팅, 그리고 많은 물량을 앞세워 개봉하는 <칠검>에 대한 무협 영화 팬들의 기대는 대단한 데가 있습니다.

<칠검>, 소설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힘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다

▲<칠검>의 포스터     © 타이거픽쳐스

영화 <칠검>은 <칠검하천하(七劍下天下)>라는 방대한 양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그런만큼 시간도 2시간 32분 가량으로 꽤 긴 편이죠. 어떻게 보면 모험입니다.

방대한 양의 원작으로 영샹으로 표현하는 자체도 그렇지만, 분명 소설에는 영상으로도 표현하기 막연한 장면도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분량의 원작 소설을 성공적으로 히트를 쳤던 영화는 < la 컨피덴셜 >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덕분에 매끄럽게 각색에 성공한 각본가 브라이언 헬겔랜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합니다.

소설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는 분명한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원작의 고증을 우선시하다 보면, 상영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으며, 그렇다고 시간적인 요소를 배려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기 십상인 경우가 많죠. 그렇기 때문에 이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작에 대한 이해도와 함께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과 균형 감각, 그리고 편집입니다.

<황비홍>의 경우에는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것은 아니지만, 실존했던 인물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 일대기 중에서 특정 사건 1개만을 선택해 오락적인 요소와 적절히 조화시켰기 때문에, 속편도 지속적인 성공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칠검>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죠. 초반부를 장식하는 화면의 울긋불긋하면서도 어두운 색채는 관객의 구미를 당기기 충분한 매력이지만, 이것이 독이 되고 맙니다. 지나치게 어두운 이 색채 감각은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그 많고 많은 캐릭터들을 구분하기 힘든 장애요소가 나타납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주요 인물들을 한꺼번에 등장시키고 있는데, 캐릭터들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결국 내용 파악마저도 힘들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죠.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리밍(여명)의 캐릭터를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했다는 것도 더불어 말하고 싶습니다.

초반부에서 영화가 흔들린다면,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영화들의 초반부는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의 개연성을 설명하는 시간인만큼, 두드러지지는 않더라도 클라이맥스보다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캐릭터 출현의 연속과 함께 내용 파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애매모호한 이야기 부분이 초반부터 관객을 흔든다면, 상영시간이 길든, 짧든 그 이후부터는 관객에게는 고문의 시간일 뿐입니다. <칠검>은 특히 2시간 30분이 넘는 긴 영화라서 그 고문의 강도는 더 심해지겠죠. 더욱이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라면 그 고통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면 속에서 '리밍'을 찾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 타이거픽쳐스

'와이어 액션'에 관한 논란

게다가 <칠검>은 쉬케 감독의 또다른 선택이 영화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황비홍>을 통해 알 수 있는 쉬케 감독의 절대적인 상징은 화려한 와이어 액션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 무협 영화들이 '문파간의 대결'이라는 극도로 제한적인 소재만을 가지고 '정신없다'라는 평가를 들어가면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핵심포인트는 와이어 액션이었습니다. 원작에 대한 고증을 우선시하고 싶었던지 쉬케 감독은 이 와이어 액션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와이어 액션 없이도 영화의 액션은 '쉬케'의 영화답고, 무술감독인 유가량의 힘이 드러난다는 평은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화려한 와이어 액션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이것도 다소 당황스러운 요소였습니다. 무협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과거 속에서 이루어지는 판타지와 비현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도 취향에 따라 의견이 엇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장예모 감독의 <연인>이 <무간도>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만큼의 혹평을 듣지 않았던 이유는 그 화려한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무협 영화의 상징인 와이어 액션만큼은 그 진수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꼭 보여야 할 것은 다 보여줬다는 거죠. 결국 무협 영화에 있어서 와이어 액션은 '팥 없는 찐빵' 아닐까요?

<칠검>은 보다 더 짧고 굵은 이야기 구조와 지금보다는 다소 밝은 화면으로 관객들을 찾아와야 했습니다. 결말 부분을 보니, 쉬케 감독이 <칠검>도 <황비홍>처럼 지속적인 속편을 제작할 것으로 보이던데, 이렇게 초반부터 어긋나면, 그 이후의 결과는 장담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특히 한국의 관객들은 무엇보다 이야기 구조의 연결을 중요시 여기는 높은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볼거리가 화려해도 부실한 이야기를 가졌던 영화가 한국에서는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사례들이 참 많죠.

▲어렵게 한국어하느라 고생한 \'옌지탄(견자단)\'     © 타이거픽쳐스

쉬케 감독의 '슬럼프'은 어디서부터?

그러고 보면 모든 영화인들의 꿈인 할리우드 진출은 한편으로 '독이 든 성배'이기도 합니다. 쉬케 감독의 슬럼프는 장 끌로드 반담과 콤비를 이루며,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영화인 <더블 팀>부터 시작됩니다. 그보다 앞서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존 우 감독도 <페이스 오프>나 <미션 임파서블2>가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페이첵>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공백기간이 길어지고 있으며, 대니 보일 감독이나 가이 리치 등 영국 출신 감독들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이안 감독은 <와호장룡>이 할리우드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실패한 영화로 평가받는가 하면, 신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오히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죠.

이 현상은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과 할리우드가 요구하는 관점 사이에서의 균형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미 <영웅본색3>을 통해 현대극으로는 쓴 맛을 보았던 쉬케 감독은 할리우드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고는 자신의 고향인 '무협극'에서도 현대극에서의 실패를 이끈 비슷한 이유로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할리우드는 참 무서운 곳입니다.

비록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해도, 영화는 원작을 잃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폭넓은 공간에서 이뤄어지는 예술 분야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배려도 필수적이죠. 쉬케 감독이 <칠검>의 속편 제작도 선언한만큼, 이번 영화를 대단히 힘겹게 본 관객의 입장에서 쉬케 감독에게 부탁하고 싶군요. 부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명쾌한' 영화를 연출해달라고 말입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