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옥탑방에 고양이는 없고 '늑대'만있다?

'살아보고 결혼하자'고? 남자는 여자를 얼마나 아는가

권태윤 | 기사입력 2003/07/11 [11:06]
▲ mbc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     ©mbc 홈페이지

종영을 앞둔 mbc tv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청춘남녀들의 ‘동거(同居)’가 화제다. 작가 김유리씨는 “서로 결혼을 약속할 만큼 사랑하는 사이라면, 먼저 살아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동거’란 단순히 함께 기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행위까지 포함하는 사실혼 관계를 의미한다. 

청주대학생생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생 12명중 1명꼴로 재학 중 동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가운데 60% 정도는 ‘사정에 따라 동거할 수도 있다’ 고 나타났다. 경북대신문이 남·여 재학생 200명(남여 각 100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이성간 동거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도, 조사대상자의 44.6%가 동거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동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흐름을 반영하듯 ‘혼전동거 알선사이트’에도 미혼남녀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사이버 상에서 혼전 동거를 주선하는 사이트들이 성업 중이고 이미 수천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해 수백 쌍의 동거를 주선하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다. 

동거에 찬성하는 젊은이들은 그 이유로 사랑의 시험 기간을 둘 수 있다는 것,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따위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20대, 30대 초반의 젊은 세대들은 '동거'를 하나의 유행쯤으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짙다. 사실 이들이 동거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경제적 부담을 받지 않고, 결혼으로 인한 구속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동거란 "법적으로 부부가 아닌 남녀가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부부 관계를 가지면서 사는 것"이다. 즉 불법적인 부부관계를 갖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세대들이 말하는 동거란 섹스파트너,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밤에 헤어지기 싫어 한 이불 덮기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좋으면 사는 거고 아니면 호적에 빨간 줄 긋지 않고 깨끗하게 헤어지면 되는 재미난 놀이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옥탑방 고양이의 작가 자신도 ‘서로 결혼을 약속할 만큼 사랑하는 사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 정도로, 아직 우리사회에서 청춘남녀들의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들이 아무리 ‘생활비 절약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끌어다 붙인다 해도 대개의 사람들은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서‘로 인식한다. 특히 여자의 혼전순결을 중요시해 처녀막 재생수술까지 받도록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나라에서 ‘동거생활’의 경험이 여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에서도 요즘 유행하는 동거는 문제가 많다.

부모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하겠다.”고 말하면 “오냐 그래. 넌 성인이니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며 허락하기는커녕 대개의 부모들은 “다릴 분질러놓겠다”거나 “가위 가져오라”는 불벼락이나 내리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만큼 여성의 혼전동거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가까운 사이라도 면전에서는 “동거가 뭐 어떠냐?”고 말하며 호응하다가도 뒤 돌아서면  "쟤 동거한데."  "볼 장 다 본년" 하며 손가락질 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적지 않다. 이른바 '깨인 세대'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막상 자신의 결혼상대가 과거 동거경험을 가진 사실을 알았다면, 고민을 거듭하거나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는 사례가 많다. 

자기 배우자가 딴 이성과 동거를 한 사실을 알았을 때 과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 뚜렷한 확증이 없으면 성적인 관계를 부인할 수 있는 연애와 달리, 동거는 남녀간에 성관계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여자만 ‘흠 있는 여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남자에겐 한없이 관대한 우리 사회에서는 동거 역시 남자에겐 큰 오점으로 남지 않는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넘어간다. 당연히 고통은 여자만의 몫이 된다.

실제로 동거커플 모두가 결혼으로 직행하지는 않는다. 생각지 못했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갈등, 성격차이, 생활방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겉으로는 "살아보고 결혼하자!"라며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섹스파트너를 구하거나 연애상대를 만날 기회로 '동거'를 적극 주장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 

▲동거에는 귀여운 고양이인 남자는 없고, 늑대만 있을 뿐이다?!     ©mbc홈페이지
10년 전쯤이다. 먼 친척뻘 되는 고향 마을 여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대학에 다니던 그녀는 2학년 때 “죽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남학생과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녀의 임신사실을 안 남학생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강요했고, 결국 중절수술을 받을 시기도 놓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처럼 동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 <와니와 준하>나 순정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만 가득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행 삼아 '한 번 해 보자'는 충동적 동거는 특히 위험하다. "난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동거는 오로지 남자에게만 ‘신나는 놀이’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많이 팔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 어휘와 문법을 갖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어떤 형태의 동거이든 동거를 결심할 정도라면, 여자들은 결혼을 전제로 하거나 최소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확신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동거를 결심하면서 그만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남녀의 코드가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오히려 “진짜 사랑하는 여자와는 동거 같은 일은 저지르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여성들은 함께 사는 동거를 진정한 사랑 때문이라고 믿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자들에겐 섹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욕구의 분출구’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말이다.

물론 결혼생활 역시 사소한 버릇 하나로도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것이다. 완벽할 수가 없다. 둘이서 몇 십 년을 같이 산다는 건 사랑만으로는 어렵다. 서로가 서로한테 스며들거나 맞춰지는 과정이 지속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 가능성을 사전에 따져보는 게 동거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꼭 동거를 해야만 서로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간의 동거를 통해 상대를 알 수 있다고 믿는 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하물며 평생을 살아도 서로의 속을 모르는 것이 남녀관계라는 말도 있다. 

게다가 혼인이 동거와 다른 것은, 적어도 혼인에서는 부부애의 서약을 통하여 맺어진 유대에서 생기는 모든 책임을 공적(公的)으로 지게 된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인 동거는 혼인의 어떠한 권리와 의무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동거가 끝나 버릴 수 있는 가능성에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은 여자만의 몫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동거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경제적인 이유나 법적인 곤란을 피하려고 이러한 선택을 정당화하지만 대개의 남자들은 이러한 실리주의와 쾌락주의뿐 아니라,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무한한 자유를 배경으로 한다. 참된 부부애에 내포되어 있는 지속성과 책임, 권리와 의무에 대한 약속은 처음부터 회피되는 것이다.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자주인공을 ‘고양이’ 정도로 여기며 귀엽게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가 만만한 여성을 선택해 맘껏 농락하고 우려먹는 야비한 ‘옥탑방 늑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자주인공에 대해 ‘본래 심성은 착한 놈’이라는 주장도 많이 하지만, 그것도 웃기는 소리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악한이라고 해도 100% 악인은 없다. 착취를 사랑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숱한 바람둥이들의 재주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결국 ‘진정한 사랑’을 발견해가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아쉬움과 동정심이 생겨난 것일 뿐이라고 본다. 

성인이 되었으니, 그런 동거를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권리도 물론 나에겐 없다. 그러나 요즘 사회의 동거가 어쨌거나 여성에게 지극히 불리한 것이 분명한 현실에서, 자기인생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니 알아서 하면 된다는 주장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라고는 손톱만큼도 모르는 ‘얼치기 사내’, ‘음흉한 늑대’들이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랑으로’만을 외치며 늑대와의 동거를 주저 없이 선택하는 여성들에게서 불안을 느낀다. 물론 나는 그것이 나만의 지나친, 또는 쓸데없는 염려이길 만을 바랄 뿐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 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 진자맨 2003/07/13 [08:35] 수정 | 삭제
  • 동거는 혼인을 파괴하고
    동거는 가정을 파괴하고
    동거는 사회를 파괴한다.
  • .... 2003/07/12 [14:08] 수정 | 삭제
  • 텔레비젼이 사회를 반영하는게
    아니라 사회가 텔레비젼을 반영하는거다.

    예전에도 동거문화는 존재 했었다.
    단지 예전에는 그게 더욱 더 감춰져
    있을뿐이다.
    그런데 유독 지금에만 마치 유행이
    된 듯한 이유는?.

    그건 텔레비젼이 사회를 반영하는게
    아니라 텔레비젼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 사회에 유행처럼 퍼지는 거다.

    거대 대중미디어 사회의 획일적인
    영향력이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

    텔레비젼에 대한 사회의 통제권은 이미 벗어난지
    오래다. 이제는 대중미디어가 사회를 맘대로
    만들어 내는 사회다.

    모두들, 대중미디어에 대해 비핀적 능력을 기르도록.
  • 글쓰는이 2003/07/12 [06:43] 수정 | 삭제
  • ...차마 나서서 말리지는 못하겠지만, 성차별적인 사회여건상 여성에게 불리하니 웬만하면 하지 마라....라고 요약되는 군....
    ㅋㅋ....
    근데 말이지....
    '어디 감히 기집이~ 떽!'이라구 훈계하고 나서는 '어른신'이나
    성차별적 사회를 들먹이며 나서는 분이나
    결국,
    '여자는 무조건 조신하게 몸조심해야혀'로
    결론나는 건 신기무쌍한 일이다.

    게다가 따져보면 '여성에게 불리'라는 내용물,
    혹시 '몸배리면 시집 못간다'는 전래동화와
    결국 같은 내용은 아닐까나...

    남정네가 늑대든 괭이든, 강쥐든 그게 문제가 되는게 아닐걸?
    거창하게 사회여건이 어쩌니 같은 걸 입에 올렸다면
    적어두 그에 합당한 결말은
    '살아보구 좋으면 계속 살구, 꽝이면 관두구' 정도의
    운신의 폭두 (남자도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여자에게는 특히 만만치 않아 보이는 그런 사회를
    바꿔보자구 부추겨야 옳은게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남정네를 욕하는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고로 아녀자는 몸조심 하거라'고 '내훈'을 재탕하는 것두
    마다 않는 집념에 박수우~~

    *토막상식 하나,
    괭이라는 건 동물다큐에서 그러는데, 배가 불러두 작은 동물은
    무조건 잡아죽이고 보는 포악스런 넘이라 하더군요...
    그리구 늑대에 대한 이미지는 목양업자들에 의해 고의로 악마적으로
    조작되었던 것 정도는 상식이니 아실테고....
    당신 발치에서 헤헤거리며 쫗아다니는 강쥐의 그 본성은
    바로 늑대에게서 물려받은거라오...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