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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노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때

노정부는 기득권과 공생한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정문순 | 기사입력 2003/06/15 [19:41]

5.18 기념식 때 노무현 대통령이 한총련 학생들에게 '수모'를 당한 며칠 후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한 발언이 한동안 입에 오르내렸다. 노 대통령은 최근 줄줄이 이어지는 사회단체들의 집단 행동이 막무가내라고 느낀 듯하다. 그의 지지자들이라면 이런 투박한 어투가 솔직하다고, 살 냄새나는 언어 구사력이라고 느꼈을 법하다. 하긴 역대 정권 치고 국민에게 국정 운영자로서 속내를 훤히 보인 대통령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잖이 튀는 어법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시끄럽다. 현 정부가 도무지 마뜩찮은 수구세력에겐 잔뜩 벼르고 있다 걸려든 먹이감을 만난 셈이다.


▲ 수구세력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직설적인 화법은 '밥'이 되어왔다
안 그래도 노 대통령의 직설적인 화법은 늘 이들의 '밥'이 되어왔다. 그런 차에 이번엔 좀 더 강도를 높인 '못해먹겠다는' 발언은 어느새 국정 책임자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상소리이자 대통령직 태업 선언쯤으로 둔갑되면서, 그의 미국 방문 이후 잠시 접어두었던 대통령의 자질론을 다시 꺼내기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조선닷컴에 실린 전여옥의 문제의 칼럼, '그는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는 이를 잘 보여주는 '명문'이라 할 만하다. 노 대통령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집권자의 '매너'와 '품격'을 갖추려면 멀었고, "한 나라의 국정을 담당하기엔 그의 역량이 부족하니" 청와대 입성이 안되었어야 본인에게 좋았단다. 한 마디로 대통령이 '근본'도 없고 무식해서 못 쓰겠다는 것이다. 나라꼴이 더 거덜나기 전에 대통령 그만 하시라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모진 언사가 이쯤 되면 노 대통령과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마저 혀를 차게 만들기에 족하다.

[관련기사]
전여옥, 그는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조선일보
노혜경, 전여옥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여성신문

전씨의 글만큼 현 정부를 대하는 수구세력의 불편한 심정이 분명하고도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을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담함이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라 오히려 이처럼 솔직한 글을 쓴 지은이의 의도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글쟁이가 공들여 쓴 글은 선의로 읽어주어야 하나 의심이 가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그 글이 정말 대통령 물러가라는 말로 읽어야 할까? 그들은 날만 새면 대통령을 할퀴지 않고서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불안하다는 말인가? 물론 수구 세력으로서는 노무현 정부가 없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온건 개혁 성향의 이 정부는 결코 이들과 첨예한 대립을 이룬다고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집권 하에서도 자신들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굳이 "물러가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여옥 식의 터무니없는 발악에서 읽히는 건 기득권의 성채가 그만큼 견고하다는 것, 개혁의 칼끝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은 완강하게 무식하고 말이 안 통하는 집단이니 터럭 끝이라도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좋은 말로 구슬리거나 얼러서 뭔가 얻어낼 궁리일랑 하지 말라고 미리 겁을 주자는 것이다. 현 정권의 태생적인 온건함은 자신들이 염치도 모르고 막나갈수록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성공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수구 세력이 온건 보수 세력에 지나지 않는 이전 정부를 5년 동안 길들이고 무장해제 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일말의 양보나 타협도 개입되지 않았다. 의약분업의 시행이 누구 좋은 일 시키고 말았는지 알 수 있듯 표적을 제대로 겨냥하지 못하는 개혁의 칼은 도리어 기득권의 전리품이 되고 마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어설프고 온건한 개혁은 안 하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는, 여차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이 된다는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적어도 노 정권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개혁으로 기득권과 공생하고 만 이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괴로워하는 노무현 대통령
수구세력의 중상모략이 거듭될수록 이를 노무현 정권의 정당성을 확신하는 계기로 삼거나 떨어지고 있는 지지도에 합류하려다가 돌아서는 이들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수구의 비명에 지레 겁부터 먹을 일은 아니다. 이 정부의 개혁을 죽도 밥도 안 되게 미리 초를 치자는 기득권 세력의 의도와, 단호하지 못한 개혁일수록 앞길이 험난하다는 것이 인식되지 않는 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는 맹목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이 정권 스스로의 개혁적 역량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하겠는데, 취임 100일이 갓 지난 대통령의 행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조마조마하고 우려스러운 것이다. 전여옥의 글이 오히려 좋은 뜻으로 만들어주는 데 보탠 대통령의 "못해 먹겠다" 운운한 발언이 나온 맥락을 살펴보면, 그 말이 어디 수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던가? 전교조, 공무원 노조, 화물연대, 한총련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이익집단의 힘 겨루기로 치부하고, 그들에게 시달려서 괴롭다고 속내를 토로하는 것은 개혁 대통령다운 태도가 아니다.

"못해 먹겠다"는 말에 뒤이어 '강경 대응'이니 '단호한 대처'니 하는 말이 동반될 수 있는 한 그의 언어 구사는 이미 서민적인 소박함이 아니라 권위적인 통치 의식의 표출임을 드러낼 뿐이다. 그의 입에서 공안 정국 식의 살벌한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전교조의 반발이 '국가기능 마비'를 부른다고 매도해놓고도 지지세력의 이탈에 대해 그가 섭섭함이나 배신감을 느낀다면 주객 전도라 할 만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보다 지지는 노 정부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 선택의 입지가 넓지 못한 집권자의 고충을 이해한다거나 실책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옹호는 아름답지 못하다. 대통령이 흔들릴수록, 자신이 현실에 균열을 가하려는 개혁 대통령인지, 기성의 법과 질서의 엄정한 집행자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일수록, 아니 수구세력의 입이 거칠어질수록, 개혁에 대한 뜨뜨미지근한 태도는 오히려 독이 되기 쉽다는 점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어법만큼이나 거침없이 기득권과 맞장 뜰 수 있게 하려면 부지런히 꾸짖고 비판하는 것,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참된 지지의 방식이고 개혁에 동력을 실어주는 길일 것이다. / 편집위원

* 본 기사는 여성신문 730호에 실린 노혜경씨의 글 ‘노무현은 불안하지 않다- 전여옥과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해 본지 정문순 편집위원이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보다 비판이 필요할 때”라는 요지로 여성신문 73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여성신문 홈페이지 안내 http://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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