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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키노(KINO), 지령 99호로 폐간된다

[손봉석의 컬처 지오그라피] 작가주의 영화입문서의 산실

손봉석 | 기사입력 2003/06/12 [12:32]
5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인들은 '카에 뒤 시네마'라는 영화잡지를 자신들의 방파제로 두고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생산된 말초적인 오락영화를 배격하고 감독을 하나의 예술가로 본 이 잡지의 편집방향은 지금도 '영화작가'와 '예술영화'(art film)에 대한 확고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선봉으로 한 일본의 ‘쇼치쿠 누벨바그’도 ‘키네마 순보’의 보호막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 키노 표지사진
하지만 한국의 '카에 뒤 시네마'를 지향했던 영화전문지 '키노'(kino)는 오는 7월 지령 99호를 끝으로 폐간이 확정됐다.

이연호 키노 편집장은 연합통신에 "소비주의가 판을 치는 영화시장에서 작가주의적 영화잡지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지만 노선을 수정하는 것은 키노가 그동안 일궈놓은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선택할 수 없었다"고 폐간이유를 밝혔다.

영화계에서는 이번 키노의 폐간을 95년 5월부터 이어져 온 예술영화, 작가영화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와 비평의 장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편집장을 맡아 1995년 5월 첫선을 보인 키노는 다른 영화잡지들이 배우들의 사생활이나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뒷이야기에 집중하던 시기에 국내외 작가주의 영화를 집중 소개해 영화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키노는 세계영화계에서 비디오가게를 위한 'b급 오락영화'의 공급처로만 인식되던 홍콩 영화계에서 현란한 이미지로 고향상실의 아픔을 보여준 왕가위 감독을 발굴해 국내에 소개 한 것을 필두로 다양한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을 소개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키노가 단순한 서구평단의 전달이나 소개에 그치지 않고 극동 아시아의 변방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새로운 영화와 감독에 대한 평가와 분석에 힘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일본 내에서 'cf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찍는 신세대 감독'으로만 인식되던 '러브레터'의 이와이 슈운지 감독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의 영화세계가 단순한 순정만화 취향의 멜로물이 아닌 시간과 기억에 대한 독백임을 알려 주기도 했다.

또한 같은 분단국가인 '중화민국'과 '중국'의 영화에 대해서도 동병상련에서 나오는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 대만의 거장 후 샤오시엔에 대한 이해와 학습에 많은 지면을 할애 했고, 중국의 '포스트 5세대'나 '지하전영'에 대한 소식도 어느 매체보다 자세히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 키노 표지사진
키노는 또 국내 영화를 다룰 때도 다른 영화월간지들이 좀처럼 기사로 취급하지 않은 검열반대운동이나 독립영화 진영의 신작들에 대한 비평을 비중있게 다루며 정치적인 대안매체로서의 영화의 위치를 고심하기도 했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서울단편영화제' 기간에는 예심을 통과한 전 작품의 리뷰를 기사로 담아 국내에서 '습작'의 의미만 지니던 단편영화를 하나의 완결된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앞선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매년 여름철에 특별연재로 다룬 '비디오 백일야화'는 출시된 사실조차 잊혀졌던 명작과 컬트영화를 소개해 주는 충실한 가이드 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키노의 노력 덕분에 국내 관객들은 80년대 까지 이어진 할리우드 중심의 편식적인 영화보기를 벗어나 제3세계와 동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키노는 최근 2~3년 사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영화의 상영주기가 짧아지면서 월간지라는 특성상 최신상영작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나 비평이 물리적으로 힘들어지고 인터넷의 문법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키노의 '무겁고 진지한 비평'이 부담감을 주면서 독자 수가 급감하고 이에 따라 광고수주에도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3년간은 예고없이 합본호가 나오거나 발행일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독자들을 불안하게 했다.

한편에서는 키노의 폐간에 대해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 감독은 “키노는 대중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주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다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관계자는 인사들은 키노의 폐간을 아쉬워 하는 분위기다.

허문영 ‘씨네21’ 편집장은 “키노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갔고 특히 영화에서 작가주의를 옹호하고 해명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고 평가하고 “이번 폐간은 갑작스런 경영악화 보다는 인터넷 매체인 엔키노의 모태가 된 오프라인의 잡지를 다른 소유주에게 넘겨 그 성격이 변질되게 하기 보다는 폐간을 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편집장은 “우리 영화계를 지켜주던 ‘작가주의'의 축이 사라져 버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키노의 폐간의 어쩌면 영화가 더 이상 감독의 창조적 '예술'이 아닌 투자사와 배급사, 그리고 연예인을 '사원'처럼 관리하는 기획사의 '상품'이 된 시대를 반영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왕가위 감독을 직접 인터뷰 한 96년 1월호 키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영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감독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화감독을 통해서 영화를 생각하고, 영화를 사랑하고 비판할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 객원기자

추신 : 사실은 필자도 개인적으로 키노에 얽힌 작은 추억이 있다. 독립영화를 촬영하던 필자의 사진이 독립영화계의 처절한(!) 현실을 다룬 기사의 자료사진으로 키노에 실린 것이다.        


<아래의 글은 키노관계자의 키노폐간에 관한 저간의 사정을 밝힌 글입니다. 필자가 키노폐간의 속사정을 널리 알린다고 해서 여기에 옮깁니다-편집자>

안녕하세요.

저는 키노에서 98년부터 2003년 3월까지 기자 생활을 해왔던 장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97년에 공체로 키노 기자로 합격했고 저의 의지에 의해서 대기업에서 8개월간 생활하다가 다시 키노 기자로 들어가 5년간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저에게 키노는 영화를 가르쳐준 스승이자 어버이였습니다.

얼마전 키노가 폐간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오늘 너무 많이 술을 마셨습니다. 이게 과연 후배 기자들이나 편집장님에게 오히려 누가 되는 행동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이 게시판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키노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실 키노 폐간과 그다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키노 페간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이미 수석 기자로 있을 때부터 있었던 일입이다.

사실 리노베이션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키노의 새로운 면모는 방핼인인 김대선 사장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키노가 그 특유의 지적인 선정성으로 명품 광고를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키노 편집부는 키노를 살리기 위해서 김대선 사장의 기획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김대선 사장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시장상황이 좋지 않자 키노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키노 독자들은 다 똘아이들이다.. 골방에서 틀어박혀 글을 읽는 정신병자들이다.. 절대 독자 엽서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력이 있는 새로운 독자를 도모해야 한다"면서 키노의 편집권에 대해서 매번 딴지를 걸고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키노는 독자여러분과의 대화를 소중히 생각합니다'라는 문구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키노 편집부는 언제나 독자여러분의 생각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업신 여기고 경멸하면서 명품광고 유치에 형안이 되었던 것은 발행인인 김대선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키노 독자를 비웃었고 바보에 *신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다 구매력이 있는 새로운 독자를 원했습니다. 키노의 변화는 사실 편집부의 의지가 아니라 지본가의 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선 사장은 자신의 마케팅적 불찰을 모두 키노 편집부에 전가하였습니다. 그는 수익성의 모든 잘못이 키노에 있다고 몰아붙였고 심지어 키노가 다른 자본가에게 인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노라는 거만하고 남의 돈으로 지네들 좋아하는 예술을 하겠다는 잡지는 내 손으로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괴이한 책임감에 불타 키노를 폐간하겠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장은 언제나 키노와 키노 편집부 그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모두 시대에 뒤쳐진 똘아이들로 치부했습니다. 언제나 편집회의 때 우리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은 키노 골수 팬들은 키노가 무슨 내용을 담아도 그 책을 본다. '왜 그들에게 애정을 갖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광고주들이다. 한 명의 광고주를 유치하는 것이 똘아이 같은 키노 독자 천명 보다 더 중요하다'였습니다.(그는 제가 진행했던 dvd 비지터에 사장은 삼성전자 사장을 인터뷰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유는 삼성전자 사장을 인터뷰하면 그 직원들이 모두 잡지를 사볼 것이고 삼성전자 광고 유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와 편집장님은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지만 그것은 불화를 촉발시키는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키노 기자들의 논조가 어떠했든, 그들은 여러분들처럼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예술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의식에 불탔던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영재 기자와 단 둘이서 99년 3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거의 들어오는 광고가 없었지만 그 페이지를 모두 우리들의 기사로 메우면서 매일 밤을 샜던 것은 오로지 순진하게도 독자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글이 현학적이고 건방젔을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기준에서 독자들을 속이거나 게으름을 핀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독자들은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였기 때문입니다.(저는 이 말에 대한 여러분들의 반응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사려깊지 못하고 현학적이며 독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었던 키노 편집부가 과연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월 60만원에 한 달에 겨우 두 번 집에 들어가면서, 그것도 수십개월 연채를 거듭하며서, 책을 만들고 그 고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여러분, 우리들의 영화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이었지 개인적인 욕망과는 그닥 상관관계가 없었음을 당시의 멤버였던 저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이 자신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키노는 언제나 위기의 상황을 돌파해 왔습니다. '우리는 전진합니다'는 그렇게 우리들의 슬로건이자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황이 단순히 키노 폐간과 관련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키노는 여전히 투쟁하고 있고 그 투쟁의 지점은 천민 자본주의의 기고만장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녕 여러분들은 똘아이입니까? 여러분들을 영화 동지로 생각하고 함께 한 키노는 바보 잡지입니까?

투쟁은 지금 이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권리입니다. 함께 싸우지 않겠습니까? 이 우스꽝스럽고 기고만장한 자본의 논리와...

이것은 단순하게 한 월간지의 폐간에 관련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키노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키노는 자본의 논리 앞에서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잡지였습니까? 여러분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그렇게 부끄럽게 묻어버리고 굴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전진합니다.

ps: 사실 저는 오늘 너무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이렇게 분노에 몸을 떨면서 술을 마셔본 적이 정말 얼마만인줄 모르겠습니다. 저는 키노를 그만두었고 이제 여러분들처럼 독자의 자리에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내부의 사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터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저는 계속 이 사이트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 것입니다. 정말 순진한 편집부, 착한 우리 후배들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여기에 다 털어놓을 생각입니다. 키노는 그렇게 기고만장하고 현학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잡지의 존립 여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키노의 순진성을 믿어주십시오, 키노는 한번도 자신의 원칙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비극은 그러한 고지식함에 비롯된 것입니다.

두서없는 글을 반복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면 제대로된 논지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다시 이 * 같은 엔키노 인터넷 공간에서 만납시다. 술이 깬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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