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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라는 단어에 알아서 반응하는 잡초들

잡초밭의 정치인들과 잡초도우미 '조중동'의 이중창

권태윤 | 기사입력 2003/05/12 [13:41]
대통령의 이메일 한 통을 두고 정치권과 수구언론이 때아닌 ‘독심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5백만 명에게 보냈다는 e-메일 내용 중 이른바 '잡초론'에 대해 ‘잡초밭’이라 할 수 있는 정치권과, ‘잡초밭’을 조장하고 방치하는데 사실상 일조해 온 ‘잡초밭 도우미’인 수구언론들이 서로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며 ‘내 멋대로 독심술(讀心術)’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盧대통령이 언급한 뽑아내야 할 ‘잡초 정치인’은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 개혁의 발목을 잡으려는 정치인,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는 정치인,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이다. 이런 정치인은 당연히 뽑아 없애야 할 잡초 아닌가. 너무도 당연한 이 구절을 두고 정작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않고 있는데, 정치권이나 언론들이 “정치적 저의와 복선이 깔려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다.

민주당 구주류는 “대통령이 신당 추진을 위해 민주당내의 반대세력을 잡초로 본 것”이라고 하고,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 시민단체에 대대적 낙선운동을 전개하라고 충동질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는데, 정말 배꼽을 잡을 일이다. 편지글을 두고 대통령의 속마음까지 다양하게 읽어내는 그 화려한 독심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건 자기들 속으로만 생각할 일이지 동네방네 “나더러 잡초라고 한 것이요‘하고 소릴 지를 일이 아니다. 그건 길가에 좌판을 편 점쟁이들이게나 어울릴 행동이다.

이는 마치 “도둑질 하고 친구들 괴롭히는 나쁜 친구는 멀리해야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일반론적인 편지내용을 두고 “반장선거를 겨냥해 나쁜 친구들이 반장에 당선되지 못하도록 학생들에게 대대적 낙선운동을 전개하라고 충동질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행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조선조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25세에 병조판서를 지냈던 사내대장부 남이장군을 “남아 이십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일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라는 내용의 시 한수를 보고 엉터리 독심술을 펼쳐 그를 역적으로 몰아 죽인 한심한 세력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더 웃기는 것은 당연히 ‘잡초들을 뽑아내야 한다.’는 대의에 찬성해야 할 수구언론들까지 기분 나쁘다는 듯 사설을 동원해 엉뚱한 독심술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위험한 '잡초론' 발상>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잡초든, 약초든 이들 정치인을 선택한 것은 국민이며, 이들은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서 지금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잡초든 약초든’이라는 말이 정말 가관이다. 잡초라면 뽑아내자고 하는 것이 옳지, 일단 뽑아놓았으니 아무 소리 말라는 것은 또 무슨 소린가. 중앙일보는 나아가 “그런데 대통령이 누구는 약초이니 그대로 두고, 누구는 잡초이니 뽑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놓는 것은 국민의 선택을 무시한 행위다.”라며 없는 말도 지어낸다. 잡초를 약초로 알고 선출했다면 그것은 잡초의 혓바닥에 속은 것이지 국민이 제대로 알고 뽑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일단 구매했다고 해서 그것이 불량품이라도 가만히 놔두라는 소리야 말로 정치소비자의 주권을 포기하라는 주장과 같다.

동아일보 역시 <'잡초 제거' 누구의 몫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선출을 하던 제거를 하던 정치인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은 국민과 시대의 몫이다.”라고 충고한다. 아니, 대통령의 편지 어디에서 “내가 나서서 잡초를 뽑겠다.”고 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는 마치 ‘불량식품은 사먹지 맙시다.’라는 소리에 대해 “불량식품을 사먹어 배탈 나 죽건 말건 식품구매에 대한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니 잔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 동아는 또 “더욱이 여권 내 신당논의가 뜨거운 지금은 신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속내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뒷말까지 무성하다.”느니, “내년 총선을 의식한 대증요법적인 ‘노무현식 대중동원론’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2000년 총선에서 문제가 됐던 시민단체의 특정 정치인 낙선운동을 거론하면서 벌써부터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느니 하며 길거리에 좌판을 깐 점쟁이 노릇에 앞장서고 있다. 게다가 “잡초가 자라고 번식할 수 없는 정치토양 개선이 당연히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희한한 주장을 한다. 불량식품 제조공장을 찾아내 폐쇄하자는 소리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량식품 제조공장이나 폐쇄해야지 불량식품 사먹지 말자고 선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조선일보 역시 독심술과 점쟁이 역할의 선두주자임을 자랑하고 나선다. 조선일보는 <어버이날에 웬 ‘잡초’ 정치인論>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의 사설에서 “마침 이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해 대통령의 덕담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우선 그 내용에 놀랄 수밖에 없다.”며 가만히 있는 국민을 팔아먹는다. 덕담을 기대한 국민은 누구이고, 그 내용에 놀란 국민은 또 누구란 말인가. 조선은 나아가 “‘잡초 정치인’의 네 가지 유형까지 제시하면서 마치 국민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라거나, “그 내용을 보면 대통령의 편지라기보다는 낙선운동을 펼쳤던 시민단체 활동가가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떠올리게 한다.”며 “우리 정치 풍토로 볼 때 결국 편지에 담긴 대통령의 말은 ‘노무현 신당’ 창당의 지침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독심술을 넘어 과대망상 증세까지 나타낸다. 그러면서 예의 그 ‘대통령의 말은 품위나 어법에서 대통령다워야 한다.’는 소릴 지껄여댄다.  

‘잡초(雜草)’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작지 ·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이라고 나와 있다.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풀’이라는 말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서는 또 잡초를 풀이하면서 “잡초는 작물에 비하여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 종자의 수명도 길다. 잡초는 작물이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양분과 수분을 빼앗는다. 그리고 작물보다 큰 것은 일광을 차단하여 작물의 광합성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작물을 웃자라게 하고 지온을 저하시키며, 통풍을 저해하는 등으로 작물의 생장을 방해한다. 잡초가 우거진 곳은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되므로 이를 전파시키는 근원이 된다. 잡초 종자가 작물의 종자에 섞일 때는 작물의 품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이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제초비는 생산가를 높인다.”라고 정의한다. 이를 ‘잡초 정치인’, ‘잡초 언론’에 비유하면 참으로 절묘하게 어울린다.

“잡초정치인과 잡초언론은 옳은 정치인과 바른 언론에 비하여 술수가 뛰어나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 욕을 많이 얻어먹어 수명도 유독 길다. 이들은 옳은 정치인과 언론인이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혈세와 국력을 축낸다. 그리고 음지에서 뒷거래와 담함을 해가며 옳은 정치인, 바른 언론인의 성장을 방해한다. 잡초정치인과 잡초언론이 우거진 곳은 부정과 부패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되므로 이를 전파시키는 근원이 된다. 이들 잡초들이 정치와 언론에 섞일 때는 정치와 언론의 품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이를 방지하거나 개선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정치비용과 언론개혁 비용을 높인다.”

사전만 놓고 봐도 대통령의 비유가 참으로 절묘하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의 편지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에게는 큰 절을 두 번하는 날입니다. 한번은 저를 낳고 길러주신 저의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절입니다. 또 한 번은 저를 대통령으로 낳고 길러 주시는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리는 절입니다.

저는 경남 김해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자 석자를 쓰시는 아버지와 성산이씨였던 어머니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저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돌이켜 보면 부모님이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을 물려주셨지만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물려주신 아버지셨습니다. 매사에 호랑이 같았던 분이지만 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신념도 함께 가르쳐주신 어머니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쁜 사람.’ 오늘 그 두 분에게 하얀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국민여러분!

대통령의 어버이는 국민입니다. 국회의원의 어버이도 국민입니다. 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개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 나라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군말없이 따라야 하는 지상명령입니다. 여러분의 관심 하나에 이 나라 정치인이 바뀌고 여러분의 결심 하나에 이 나라의 정치는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관심과 결심 또한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낳아 놓고 나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잘 하면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잘 못하면 회초리를 듭니다.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농부는 김매기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냅니다. 농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선량한 곡식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국민의 뜻은 무시하고 사리사욕과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는 일부 정치인. 개혁하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뜻은 무시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으려하는 일부 정치인. 전쟁이야 나든 말든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

이렇게 국민을 바보로 알고 어린애로 아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어떤 저항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의무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헌법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실 일은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고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저에게도 어버이의 회초리를 드십시오. 국민여러분의 회초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맞겠습니다. 아무리 힘없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그것이 국익의 회초리라면 기쁜 마음으로 맞고 온 힘을 다해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있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드는 회초리라면 매를 든 그 또한 국민이기에 맞지 않을 방법은 없지만 결코 굴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너 내편이 안되면 맞는다’라는 뜻의 회초리라면 아무리 아파도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큰 뜻을 외면하라는 회초리라면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기댈 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희망을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희망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여러분!

그런데 하나 경계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집단이기주의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기 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힘있는 국민의 목소리보다 힘없는 국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체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할 때는 그 누구에게 어느 한 쪽으로 기울 수 없습니다. 중심을 잡고 오직 국익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중심을 잃는 순간, 이 나라는 집단과 집단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통치는 다릅니다. 비판자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가겠습니다.

국민여러분!

저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루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익집단은 있지만 집단이기주의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가와 민족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서는 대한민국. 좀 더 가지고 덜 가진 것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돕는 대한민국. 동(東)에 살고 서(西)에 사는 차이는 있지만 서로 사랑하는 대한민국. 바로 화합을 도약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대 차이는 있지만 세대 갈등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자식은 부모세대라 민주주의를 유보하며 외쳤던 ‘잘 살아 보세’를 존중하고 부모는 내 아이가 주장하는 ‘개혁과 사회정의’를 시대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자식은 부모에게서 경험을 배우고 부모는 자식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배우는 대한민국. 자식은 밝게 자라게 해 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는 자식의 밝은 생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대한민국. 바로 사랑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높은 자리, 많은 돈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한번 더 찾아 뵙지 못한 것, 사랑하는 아이를 한 번 더 안아 주지 못한 것,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답니다. 저도 imf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전국의 노동자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고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저의 이 편지가 부모님의 은혜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 대한민국이라는 가족공동체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효도 많이 하십시오.

우리 모두의 가슴에 마음으로 빨간 카네이션을 바치며

2003년 5월 8일 대한민국 새대통령 노무현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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