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으로 인해 레바논 내전과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고, 2007년부터 유엔 평화 유지군의 일원으로 도시 동쪽 외곽에 동명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티레는 현재 구도시와 신도시로 분류되고 있다. 그 중 신도시는 육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티레 섬에 들어서 있는 요새화된 도시를 말한다. 신도시는 바다가 해자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아슈르바니팔의 사르곤 왕조 신(新) 아시리아 제국은 물론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바빌론 제10 왕조의 군대마저 이곳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헬레폴리스(Helepolis)라는 공성 병기로 간척까지 하면서 간신히 점령했기에 고대 세계의 철옹성이라고 불렸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도 불리는 레반트 지역에서도 특히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바논은 땅이 굉장히 비옥하여 고대부터 각종 생산물들을 생산하던 지역이라 이른 시기부터 문명이 일어서던 곳이었다. 레바논 지역에서 최초로 발생한 문명은 B.C 5000년 무렵의 비블로스였는데, 비블로스 인들이 점차 내려오면서 시돈과 티레(수르), 하솔(Hasol)을 건설하여 페니키아를 이루게 된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티레는 B.C 2750년경에 건설되었다. 당시의 이름은 페니키아 인들의 신에서 이름을 따온 멜카르트(Melkart)였으나, B.C 1350년대 이집트 신 왕국 제18 왕조 말기의 아마르나 서신에서부터 수르로 표기되었다. 이는 현재의 아랍어 지명인 수르로 이어지고 있다. 현지에서는 무려 3,000년간 같은 지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라틴어 및 그리스어로는 튀로스라 표기되었고, 영어의 티레로 이어져 서방 세계에서는 지금도 그와 같이 불리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티레의 공주 에우로페를 납치한 일화가 유명하다.
티레의 전설적인 공주 에우로페는 유럽의 어원이 되었고, 에우로페의 형제들이 그녀를 찾아 나서다가 카드모스(Cadmos)가 테베를 세우고 킬리스(Kilis)가 킬리키아를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카드모스는 페니키아 문자를 헬라스(그리스)에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전승은 그리스 인들이 자신들의 문명에 있어 페니키아의 영향을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티레가 먼 옛날부터 페니키아 연맹에 소속된 도시국가로서, 자체적인 왕국을 이루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B.C 16세기에 들어 티레는 시리아로 세력을 확장하던 이집트 신 왕국에 복속하여, 그 보호를 받으며 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다. 또한 이 무렵부터 티레의 특산물인 자주 빛 염료 생산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후일 티레 자주색(Tyrian Purple)이라 불리며 지중해 권의 고급 옷감으로써 부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페니키아가 보라색을 의미했을 정도였다. 티레의 왕정은 앞서 언급된 아마르나 서신에서 수르 국왕 아비밀쿠가 언급되어지며 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B.C 14~13세기 이집트 신 왕국 제19 왕조와 히타이트의 충돌 당시 히타이트가 티레를 포위하자 이집트 군이 이를 구원하기도 했다. B.C 12세기경, 바다 민족의 침공으로 이집트의 패권이 붕괴하면서 우가리트가 멸망하며 찾아온 혼란기에 티레는 크게 성장했다. 특히 출애굽 시기 이후 가나안 지역의 페니키아 계열 도시 국가들을 정복해 나가던 유태인의 원류인 히브리인들은 그 맹주인 하솔을 점령했으나, 티레와 시돈에서는 격퇴되었다. 이로써 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과 비슷하게 가나안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과 페니키아 지역이 나뉘어졌고, 페니키아의 가장 발달된 도시가 바로 티레였다.
B.C 11~10세기, 티레는 왕성한 해상 활동을 통해 지중해에 여러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당시 티레의 위상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기에 지중해가 티레 해(Tyrian Sea)로 불리고, 페니키아가 튀리아(Tyria)로 불릴 정도였다. 후일 티레보다 강성해지는 카르타고조차 로마와 전쟁에 돌입하여 국운을 건 전쟁을 벌이는 이 와중에까지 티레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칠 정도로, 페니키아 권역에 있어 티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를 세운 엘리사(디도) 여왕 역시 티레의 공주이자 공동 군주 출신이었다.
그리스에게도 티레 인들은 페니키아 문자와 20진법, 조선술 등의 선진 기술을 전해준 도시였다. 티레의 학자들은 천문학을 집중 탐구하여 항해술의 발전을 노렸으며, 티레의 상선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오늘날의 영국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천문학과 더불어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금속 가공업도 발달했고,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건축술 및 석공예도 발달했다. 고대의 티레는 무역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지중해 권역에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한편, 당시의 티레 섬에는 부족한 면적으로 인해 다층 건물들이 세워져 도시에 당도한 다양한 민족의 방문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고 한다.
후대의 학자들은 티레를 고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라 지칭하기도 한다. 티레 왕국의 전성기는 히람 1세(B.C 980~947)의 치세였다. 약 1,000년 후의 유태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us)는 히람 1세가 티레 섬을 확장했으며 멜카르트, 아스타르테(이슈타르), 바알 샤멤 등의 신전을 세웠다고 기록할 정도로 그는 역사적인 명군으로 기록되었다. 외교에 있어 히람 1세는 같은 시대 이스라엘 왕국의 군주들이었던 다윗과 솔로몬 부자와 친교를 맺어 자주 교류했고,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에 장인들과 레바논의 삼나무 목재를 제공하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또한 히람 1세는 필리스티아 블레셋 해적들을 격퇴하여 아라비아, 북, 동아프리카 등과의 교역을 활성화시켰다. 그 중에서도 키프로스 섬과의 교류가 특히 활발했다. 43년에 달하는 히람 1세의 안정적인 치세 동안 티레의 상인들은 하 이집트의 멤피스 등 지중해 각지로 진출하여 공동체를 형성했고, 당시 알려진 세계 곳곳에서 모인 물품들이 강력한 성곽으로 여겨지던 티레 섬의 창고에 보관되었다.
현재로 보면 티레는 세계 최대의 무역항이자 조선업 및 금융업의 중심지였으며, 다국적, 다인종의 사람들이 거쳐 가는 일종의 교통 허브였다. 수많은 중동 지역을 돌아다니고 중동 전 국가를 다녀봤지만 안타깝게도 레바논에 있을 때 티레와 비블로스 등의 페니키아 도시들을 가보지 못했다. 진짜 해양 왕국 및 해양 세력의 발상지를 연구하려면 티레와 비블로스를 가봐야 한다. 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끝나면 갈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The oldest city in the Middle East, Lebanon, Tyre
- Columnist Jeong Gil-seon
Currently, due to the conflict between Israel and Palestine, it has suffered damage from the Lebanese Civil War and Israeli airstrikes during the 2006 Lebanon War, and since 2007, the Dongmyeong Unit has been stationed on the eastern outskirts of the city as part of the UN peacekeeping force. Tyre is currently divided into the old city and the new city. The new city refers to the fortified city located on the island of Tyre, which is not far from the mainland. The new city is surrounded by the sea like a moat, so not only the Neo-Assyrian Empire of Ashurbanipal's Sargon Dynasty, but also the Babylonian 10th Dynasty of Nebuchadnezzar II could not conquer it.
Afterwards, Alexander the Great barely managed to conquer it by reclaiming the land with a siege weapon called Helepolis, and it was called the iron fortress of the ancient world. In the Levant region, also known as the Fertile Crescent, Lebanon, which is surrounded by the Mediterranean Sea, has extremely fertile land and has been producing various products since ancient times, so it was a place where civilization arose from an early age. The first civilization to emerge in the Lebanon region was Byblos around 5000 B.C., and as the Byblos people gradually came down, they built Sidon, Tyre (Sur), and Hasol, forming Phoenicia.
According to Herodotus, Tyre was built around 2750 B.C. At that time, it was named Melkart, after the Phoenician god, but in the Amarna Letters from the end of the 18th Dynasty of the New Kingdom of Egypt in the 1350s B.C., it was written as Sur. This led to the current Arabic name, Sur. The locals have maintained the same name for 3,000 years. However, it was written as Tyre in Latin and Greek, and was passed on to Tyre in English, and is still called that way in the Western world. In Greek mythology, there is a famous story about Zeus kidnapping Europa, the princess of Tyre.
The legendary princess Europa of Tyre became the origin of Europe, and it is said that Europa's brothers went in search of her, leading to Cadmos founding Thebes and Kilis founding Cilicia. It is also said that Cadmos introduced the Phoenician alphabet to Hellas (Greece), and this legend shows that the Greeks positively remembered the influence of Phoenicia on their civilization. It also suggests that Tyre had been a city-state belonging to the Phoenician League since ancient times, forming its own kingdom.
In the 16th century B.C., Tyre became a subject of the Egyptian New Kingdom, which was expanding its influence into Syria, and enjoyed economic prosperity through trade under its protection. It also seems that the production of purple dye, a specialty of Tyre, began around this time, which was later called Tyrian Purple and became a symbol of wealth as a luxurious fabric in the Mediterranean region. It was so much so that Phoenicia meant purple in ancient Greek. The monarchy of Tyre appeared in history when King Abimilku of Sur was mentioned in the Amarna Letters mentioned above.
During the conflict between the 19th Dynasty of the New Kingdom of Egypt and the Hittites in the 14th to 13th centuries B.C., when the Hittites besieged Tyre, the Egyptian army came to its rescue. Around the 12th century B.C., when the hegemony of Egypt collapsed due to the invasion of the Sea Peoples and Ugarit was destroyed, Tyre grew significantly during the period of chaos. In particular, the Hebrews, the origin of the Jews who conquered the Phoenician city-states in the Canaan region after the Exodus, occupied Hazor, the leader, but were repelled from Tyre and Sidon. This divided the Palestine and Phoenicia regions, similar to the current Israel-Lebanon border, and the most developed city in Phoenicia was Tyre.
From the 11th to 10th centuries B.C., Tyre built several colonies in the Mediterranean through active maritime activities and received tribute from them. At that time, Tyre's status grew so much that the Mediterranean Sea was called the Tyrian Sea and Phoenicia was called Tyria. Even Carthage, which later became more powerful than Tyre, went to war with Rome and waged a war that would determine the fate of its nation, and continued to pay tribute to Tyre, showing Tyre's absolute influence in the Phoenician region. However, Queen Elissa (Titus), who founded Carthage, was also a princess and co-monarch of Tyre.
The Tyrians were also a city that introduced advanced technologies such as the Phoenician alphabet, the 20th base system, and shipbuilding to Greece. The scholars of Tyre focused on astronomy and aimed to develop navigation, and it is said that Tyre's merchant ships crossed the Strait of Gibraltar and reached present-day England. In addition to astronomy, the metalworking industry necessary for shipbuilding also developed, and as the population increased, architecture and stonework also developed. Ancient Tyre stood out in the Mediterranean region not only in trade but also in scholarship. Meanwhile, it is said that the island of Tyre at that time had multi-story buildings due to its limited land area, which surprised visitors from various ethnic groups who arrived in the city. Later scholars also referred to Tyre as the most splendid city in the ancient world. The heyday of the Tyre kingdom was the reign of Hiram I (B.C. 980-947). About 1,000 years later, the Jewish historian Flavius Josephus recorded that Hiram I expanded the island of Tyre and built temples such as Melkart, Astarte (Ishtar), and Baal Shamem, so he was recorded as a historically great general. In terms of diplomacy, Hiram I frequently interacted with David and Solomon, the kings of the Kingdom of Israel at the same time, and provided craftsmen and cedar wood from Lebanon for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of Jerusalem.
In addition, Hiram I defeated the Philistine pirates and promoted trade with Arabia, North Africa, and East Africa. Among them, trade with the island of Cyprus was particularly active. During Hiram I's stable reign of 43 years, Tyre's merchants expanded to various parts of the Mediterranean, including Memphis in Lower Egypt, and formed communities, and goods gathered from all over the world were stored in the warehouses of Tyre, which was considered a strong fortress.
Tyre is currently the world's largest trading port, a center for shipbuilding and finance, and a sort of transportation hub for people of various nationalities and races. I have traveled to many parts of the Middle East and visited all of the countries in the Middle East, but unfortunately, I was not able to visit the Phoenician cities of Tyre and Byblos while I was in Lebanon. If you want to study the true birthplace of a maritime kingdom and maritime power, you should visit Tyre and Byblos. I wonder if I will be able to go there after this Palestinian-Israeli war ends. lukybaby7@gmail.com
*Author/ Gil-seon Jeong.
Member of Novatopos, historian, paleoanthropologist, columnist, research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Eurasian Archaeology and Anthropology, Russian Academy of Sc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