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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流浪)의 역사 – 유대 민족과 예루살렘 성전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3/12/05 [10:57]

▲ 동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 예루살렘성전 터 통곡의 벽, 이슬람교 성지 바위 사원이 있는 알아크사 모스크, 기독교 성지 성묘교회가 위치한 배경과 안내 지도 / 출처: google & https://blog.naver.com/bisanghara/223262451024  © 이일영 칼럼니스트

 

기원전(BC) 587년 신바빌로니아 왕국 느브갓네살 왕(BC. 634~BC. 562)에 의하여 유대왕국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 불타버렸다. 많은 유대인이 포로가 되었던 바빌론 유수이다. 이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을 창건한 키루스 대왕(BC. 600~BC. 530)이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여 유대인 귀환이 이루어지면서 성지 예루살렘에 기원전(BC) 539년 제2 성전이 건설되었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BC. 356~BC. 323)이 기원전(BC) 331년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여 마케도니아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대왕이 33세의 나이로 병사하면서 인류의 지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철학을 품은 원대한 이상인 동서 통합의 꿈은 문화의 강물 헬레니즘의 역사로 남았다. 

 

광활한 영토의 분할로 후계국을 뜻하는 디아도코이(Diadokki) 시대를 열었던 안티고노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의 거친 바람 속에서 기원전(BC) 140년부터 예루살렘을 지켰던 유대인 하스몬 왕조가 기원전(BC) 63년 로마제국에 몰락하였다. 이어 기원전(BC) 37년 로마제국이 임명한 에돔(이두매)의 이방인 헤롯 왕국 시대가 열리면서 예루살렘 제2 성전은 확장되어 역사는 헤롯 궁전으로 기록하였다.     

 

서기 66년 유대인들은 이중의 성벽 제2 성전에서 치열한 결사 항전으로 독립전쟁을 벌였으나 패하였으며 서기 70년 성전은 불타고 무너졌다. 오랜 역사의 아픔으로 남은 서편의 벽이 오늘날 통곡의 벽이다. 

 

이후 예루살렘에는 2개 로마군단이 상주하였다. 이어 115년에 발발하여 117년에 끝난 제2차 독립전쟁은 각 나라의 유대인 공동체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투쟁하였다. 

 

이후 로마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76~138)가 서기 130년 예루살렘을 순방하면서 예루살렘 북쪽에 새로운 도시 건설을 명하면서 도시 이름을 아일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었다. 이는 하드리아누스 가문의 성씨인 아일리우스(Aelius)와 고대 로마의 신성한 언덕 카피톨리노(Capitolino)를 품은 것이었다. 

 

나아가 카피톨리노 언덕에 고대 로마 신화 최고의 신이며 고대 로마 국교의 신이던 유피테르(주피터)신전이 세워진 역사를 표방하여 무너진 예루살렘성전 자리에 135년 유피테르(주피터)신전을 건설하였다. 나아가 신성한 계약으로 전해온 할례 금지와 성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유대인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이렇게 일어난 코크바 반란인 제3차 유대인 독립전쟁은 132년에 발발하여 136년에 진압되었다.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마태복음 27: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로 기록한 골고다 언덕 중턱 요셉의 새 무덤 자리를 가린 비너스 신전을 세웠다.     

 

이후 유대인의 성지 예루살렘 출입이 금지된 역사 속에서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하여 소집된 첫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후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졌던 유피테르(주피터)신전이 철거되었다. 이어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의 노력으로 세워진 교회가 예수님 무덤교회 즉 성묘교회였다.  

 

이후 성지 예루살렘에 유대인 출입이 재개된 시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단편적이지만, 역사의 행간을 헤아리게 하는 소중한 자료들이 존재한다. 

 

로마제국 시대 가이사랴 마리티마 주교이며 학자였던 유세비우스(263~339)가 313년부터 발표한 최초의 교회사이다. 여러 논란에 앞서 연대기 형태로 초대 교회사를 상세하게 정리한 소중한 유산이다. 유세비우스는 325년 발표한 교회사 3권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예루살렘 성지에 건립한 교회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어 333년에서 334년 사이에 오늘날 프랑스 남서부 항구도시 보르도에서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보르도인의 성지 여정기’가 존재한다. 여정기는 성지에 구멍이 뚫린 돌이 있었음을 알리며 유대인들이 매년 그 돌에 와서 기름을 바르고 신음으로 슬퍼하며 옷을 찢고 떠난다. 고 기록하였다. 

 

이는 333년 시점에 매년 어느 특정한 날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지 출입이 허용되었음을 뜻하며 바로 티샤 베아브(תִּשְׁעָה בְּאָב)를 말한다. 티샤 베아브란 히브리력(유대력)으로 5월 9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2023년은 이스라엘 현지 시각 7월 26일 시작되어 7월 27일 끝났다.  

 

티샤 베아브는 189년에 기록된 구전 율법 미쉬나에 아브(5월), 베(의), 티샤(9일)을 전후하여 일어난 예루살렘 제1 성전과 제2 성전이 불타고 무너진 역사를 포함한 다섯 사건을 기록하며 금식을 비롯한 다섯 가지 금기에 대한 지침을 기록하였다. 

 

이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벌 이야기를 담은 구약 4번째 민수기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신성함과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러나 믿음을 잃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티샤 베아브 즉 히브리력(유대력) 5월 9일은 12명의 정탐꾼이 40일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한 날이었다.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정복을 허위로 보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한 날이다.

 

이와 달리 바른 사실을 고하는 2명의 정탐꾼 내용은 심중하다. 

 

민수기(14: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333년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보르도인의 성지 여정기에 (유대인들이 매년 그곳에 와서 신음으로 슬퍼하며 옷을 찢고 떠난다)는 내용이 민수기(14:6)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진실을 고한 내용과 닿아 있다. 

 

어둠의 사건들이 생겨난 티샤 베아브(히브리력 5월 9일)에 종일 금식과 회개로 애통의 시간을 갖게 된 역사가 예루살렘 성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날로 추정하게 되는 것이다.  

 

살펴볼 대목이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 샤론 평원의 서쪽 둘레 가이사랴 국립공원은 앞서 언급한 최초의 교회사를 저술한 가이사랴 마리티마 주교였던 유세비우스(263~339)가 태어난 곳이며 연구의 산실이었다. 특히 가이사랴 마리티마 교회 도서관에 소장된 희귀본과 사본들의 비중은 유대 민족은 물론 유대교와 기독교 사 연구에 소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부족한 식견으로 세계사를 헤아려 오면서 깊은 생각을 가지고 살펴온 대목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기원전(BC) 4세기경 고대 페니키아인들의 정착지로 주요한 교역지로 선택한 작은 어촌 마을이 가이사랴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였다. 상인의 제국 페니키아가 개방한 가이샤라에서 유대인들은 뛰어난 상술을 발휘하여 돈줄의 항구를 거머쥐었다. 기원전(BC) 140년부터 예루살렘을 지켰던 유대인 하스몬 왕조가 기원전(BC) 63년 로마제국에 몰락하기까지의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이어 기원전(BC) 37년 로마제국이 임명한 에돔(이두매)의 이방인 헤롯 왕국 시대가 열리면서 유대 상인들은 탐욕과 허영에 가득한 헤롯왕을 부추겨 천지개벽과 같은 거대한 가이샤라 항구를 건설하게 하였다. 헤롯왕 스스로 놀라 고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BC. 63~AD. 14)에게 항구를 헌정한 역사이다. 

 

이후 중요 교역항으로 자리하면서 바로 신성한 보랏빛 염료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의 돈줄을 거머쥔 것이다. 이렇게 부를 쌓은 유대인들이 은밀하게 세계 주요 도시에서 수집한 희귀 서적과 필사본이 쌓인 곳이 가이사랴 마리티마 교회 도서관이었다. 유세비우스의 최초 교회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 가이사랴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 / 출처: google  © 이일영 칼럼니스트

 

유대 민족의 정신적 근원인 탈무드는 189년에 기록된 구전 율법 미쉬나를 바탕으로 이를 보충한 토세프타를 망라하여 해석한 게마라(גמרא)로 탄생하였다. 350년에서 400년 무렵 이스라엘 땅 유대인 학자들이 편찬한 해석서 게마라를 예루살렘 탈무드라 하고 500년 무렵 바빌로니아 유대인 학자들이 편찬한 해석서 게마라를 바빌론 탈무드라 한다. 역사적으로 바빌론 탈무드의 권위와 영향력이 인정받은 것은 아픔을 극복하려는 치열한 연구가 있었음을 말한다.    

 

필자가 부족한 식견으로 좌충우돌 장황설을 늘어놓은 이유가 바로 바빌론 탈무드에 담긴 (결혼 후 염색공이 된 남편과 이혼할 수 있는 권리를 여성에게 특별히 부여했다)는 한 줄의 내용 때문이었다. 

 

신성한 보랏빛 염료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 상상키 어려운 악취의 연속에서 탄생하는 사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고대의 보랏빛 염료처럼 신비한 역사의 행간을 헤아리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n 587 BC, the Solomon Temple in Jerusalem, the Jewish kingdom, was burned down by King Nebuchadnezzar (BC. 634~BC. 562) of the New Babylonian Kingdom. It is the best place in Babylon where many Jews were captured. Later, as Cyrus the Great (BC. 600~BC. 530) who founded the Persian Achaemenid Empire conquered SinBabylonia and returned to the Jews, the second temple was built in 539 BC in Jerusalem, the holy city. 

 

Alexander the Great (BC.356-BC.323) later conquered the Persian Empire in 331 B.C. and was ruled by Macedonia. However, as the king passed away at the age of 33, the dream of East-West integration, a grand ideal that embraces the ideas and philosophy of Aristotle, the intellectual power of mankind, remained as the history of Hellenism, the river of culture. 

 

Amid the harsh winds of the Antigonos, Ptolemy, and Seleucid dynasties, which opened the Diadokki era, which means succession through the division of vast territories, the Jewish Hasmon dynasty that had protected Jerusalem from 140 BC fell to the Roman Empire in 63 BC. Then, in 37 BC, the era of Herod Kingdom, a stranger to Edom (Lee Doo-mae), appointed by the Roman Empire, opened, and the Second Temple of Jerusalem was expanded and history was recorded as Herod Palace.     

 

In A.D. 66, the Jews fought the Revolutionary War in a fierce battle at the Second Temple of the Double Wall, but were defeated, and in A.D. 70, the temple was burned and collapsed. The wall of the western part, which has been left with the pain of a long history, is the wall of wailing today. 

 

Since then, two Roman legions have resided in Jerusalem. The Second War of Independence, which began in 115 and ended in 117, was then fought around the diaspora, the Jewish community of each country. 

 

Later, Emperor Hadrian of the Roman Empire (76-138) visited Jerusalem in A.D. 130 and ordered the construction of a new city in the north of Jerusalem, changing the name of the city to Aelia Capitolina. This had Aelius, the family name of Hadrian, and Capitolino, the sacred hill of ancient Rome. 

 

Furthermore, the 135-year-old Temple of Jupiter was built in the place of the collapsed Jerusalem Temple, advocating the histo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Temple of Jupiter, the god of ancient Roman mythology and the god of ancient Roman state affairs, on the Capitolino hill. Furthermore, Jewish anger exploded as the ban on circumcision and the expulsion of Jews from Jerusalem, the Holy Land, which had been handed down through sacred contracts. The Third Jewish Revolutionary War, a Kokba rebellion that took place in this way, broke out in 132 and was suppressed in 136.  

 

Later, Emperor Hadrian built the Temple of Venus, which covered the site of Joseph's new tomb in the middle of the hill of Golgotha, which he recorded as a tomb of his own that he sold in the rocks of Matthew 27:60 and rolled a large stone and left it at the tomb door.     

 

Since then, in the history of Jews being banned from entering Jerusalem, the Jupiter Temple, which had been built in the Jerusalem temple, was demolished after the first Council of Nicaea convened by Roman Emperor Constantine I in 325. The church built with the efforts of Helena, the mother of Emperor Constantine I, was then the tomb church of Jesus, or the Holy Sepulchre.  

 

Since then, no clear record of when Jewish access to Jerusalem was resumed has been confirmed. There are valuable historical materials that make you fathom the lines of history, although they are fragmentary. 

 

It is the first church history published since 313 by Eusebius (263-339), a bishop and scholar of Gaysarya Maritima during the Roman Empire. It is a valuable legacy that summarizes the first church history in detail in the form of a chronicle prior to various controversies. In Volume 3 of the History of the Church, published in 325, Eusebius recorded the contents of the church built in the holy place of Jerusalem under Constantine I. 

 

Then, between 333 and 334, there is the "Journey of the Holy Land of the Bordeaux", which made a pilgrimage to the holy place of Jerusalem from the port city of Bordeaux in southwest France today. The journey period announces that there was a stone with a hole in it, and Jews come to the stone every year, grease it, grieve with groans, and tear off their clothes. 

 

This means that Jews were allowed to enter the holy place in Jerusalem on a certain day every year as of 333, which is Tisha Beab (תִּשְׁעָה בְּאָב). It is May 9 in the Hebrew calendar of Tisha Beabran. In terms of the Gregorian calendar we use, the year 2023 started on July 26 and ended on July 27 in Israel's local time.  

 

Tisha Beab recorded five incidents, including the burning and collapse of the First and Second Temple of Jerusalem around Mishnaev (May), Be (Ui), and Tisha (Ninth), a oral law recorded in 1899, and recorded guidelines on five taboos, including fasting. 

 

This begins with the fourth civilization of the Old Testament, which tells the story of the conquest of Exodus and Canaan. It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sacredness and faith, along with the promise that the people of Israel will receive Canaan. However, it is a record of losing faith and being unable to enter the Promised Land.

 

Tisha Beab, or Hebrew Power (Jewish Power), May 9 was the day when 12 spies returned from their 40th Canaan inspection and reported it. It was the day when 10 spies falsely reported the conquest of Canaan and the people of Israel cried all night.

 

On the other hand, the contents of the two spies who tell the right facts are serious.

 

Of those who searched the land, Joshua son of snow and Caleb son of Zephyne tore off their clothes/ and said to the whole congregation of the Israelites, "The land we have searched through is a very beautiful land/ If the Lord is pleased with us, he will lead us into the land, and give us the land. It is a land of milk and honey/ But do not disobey the Lord, and do not be afraid of the people of the land. They are our food; their guardians have left them; the Lord is with us. Do not be afraid of them 

 

In 333, during the pilgrimage to the Holy Land of Jerusalem, "Jews come there every year and tear their clothes apart, grieving with groans," is in line with the truth of Joshua, son of the Ephraim tribe, and Caleb, son of the Judah tribe, tearing their clothes apart. 

 

The history of fasting and repentance throughout the day on Tisha Beab (May 9th in the Hebrew calendar), when dark events occurred, is presumed to be the only day when it was possible to enter the holy city of Jerusalem.  

 

There is something to look at. Today, the western circumference of the Sharon Plain in Israel is the birthplace of Youssebius (263-339), the Bishop of Gaisarya Maritima who wrote the first church history, and was the birthplace of his research. In particular, the proportion of rare copies and copies in the library of Gaisarya Maritima has a valuable connection to the study of Jewish and Christian history as well as the Jewish people.          

 

The following is a summary of what I have looked at with deep thoughts while calculating world history with insufficient insight. 

 

Caesarea Maritima was a small fishing village that was chosen as a major trading post around the 4th century BC as a settlement of ancient Phoenicians. In Gaishara, which was opened by Phoenician, the empire of merchants, Jews used their outstanding tactics to seize the port of money. It was the main driving force from 140 BC to the fall of the Hasmon dynasty, a Jewish man who protected Jerusalem, to the Roman Empire in 63 BC. 

 

Then, in 37 BC, the age of Herod's kingdom, a stranger to Edom (Bidumae) appointed by the Roman Empire, began, and Jewish merchants encouraged Herod, who was full of greed and vanity, to build a huge Gayshara port like the Great Wall of Heaven and Earth. Herod was surprised by himself and dedicated a port to Augustus (BC. 63~AD. 14), the first emperor of ancient Rome. 

 

Later, it became an important trading port and became the source of money for the sacred purple dye "Tyrian purple." The library of the church was the place where rare books and manuscripts collected by Jews who accumulated wealth in secret from major cities around the world were accumulated. This is the background of the birth of the first church history of Eusebius.

  

Talmud, the spiritual source of the Jewish people, was born as Gemara (גמרא), a supplementary interpretation of Tosepta based on the oral law Mishna recorded in 1899. Gemara, an interpretation compiled by Jewish scholars in Israel between 350 and 400, is called the Jerusalem Talmud, and Gemara, an interpretation compiled by Jewish scholars in Babylon around 500 years, is called the Babylon Talmud. Historically, the authority and influence of the Babylon Talmud have been recognized, indicating that there have been intense studies to overcome pain.    

 

The reason why I made the left-wing, right-wing rumors with insufficient insight was because of a line in Babylon's Talmud (special rights were granted to women to divorce their husbands who were dyed after marriage). 

 

This is because the sacred purple dye Tyrian purple is in contact with the fact that it is born from a series of hard-to-imagine odors. Like the lost ancient purple dye, we continue the story by poring through the mysterious lines of history. artwww@naver.com

 

Author: Lee Il Young

Director, Korean Art Center. Columnist.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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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SUN 2023/12/05 [14:10] 수정 | 삭제
  • 재밋어, 재밋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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